수많은 동물들이 멸종한 세계에서 일하는 소년, 그리고 부상을 당한 새를 발견하게 된 이후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단편 비주얼 노벨. Avian Enigma 는 직역하자면 “조류와 관련된 수수께끼” 라는 뜻으로, 게임의 전체적인 스토리이자 이 게임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조류가 뭐 그렇게 특별하냐?”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게임의 세계관에서는 인류를 제외한 동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제외한 동물들은 모두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들이며, 대부분의 기계 동물들은 관상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보안 목적으로 만들어져서 회사의 기밀 정보를 지키거나, 역으로 산업 스파이처럼 다른 회사의 정보를 염탐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당연한 것들이 여기에서는 환상으로 여겨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스토리의 서론을 간략하게 적자면, 유전자 공학 회사에서 일하면서 식물 종자들의 품질 관리 및 질병 확인을 담당하는 주인공 소년은 – 참고로, 게임 내 주인공의 직접적인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스팀 페이지에서도 그냥 “소년” 으로 적혀 있다 – 새라는 동물에 호기심을 가지며 살아 있는 새를 찾는 것에 대한 낭만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물이 존재하지 않고 식물들은 모두 공장의 통제를 받고 있는 세계에서 그런 꿈이 이루어질 리가 없고, 그렇게 하루하루 공장에 출퇴근을 하던 어느 날, 주인공은 자신이 다니던 공장의 로봇 고양이들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한 새를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그냥 보안 로봇들이 스파이 로봇을 격추한다고 생각하고 지나갔겠지만, 주인공은 새를 고양이에게서 구하고 자신의 사물함에 새를 숨겨 놓은 뒤 건강해질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 몰래 돌보게 된다. 그러다 새가 충분히 건강해졌다고 생각했을 때 새는 사라지게 되고, 며칠 뒤 새의 깃털 문양과 비슷한 옷감을 두르고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 주인공, 그리고 이 둘 간의 상호작용 및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게임의 전체적인 스토리이다. 사실, 스토리의 서론을 간략하게 적는다고 말하긴 했으나, 게임의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아서 사실상 위에 적은 내용이 게임의 약 50% 정도이다. 이 게임의 플레이타임이 스팀 페이지에 약 45분 정도라고 적혀 있는데, 솔직히 30분 정도면 엔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짧은 게임이다. 게임 장르의 경우도 비주얼 노벨이라고 맨 위에 적기는 했으나, 플레이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키네틱 노벨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스토리 퀄리티는 어떠한가? 당연하지만, 게임의 분량이 짧기 때문에 분량이 10시간 이상을 넘어가는 비주얼 노벨들과 비교하면 이 게임의 스토리 짜임새가 떨어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중편 소설이 아니라 단편 소설의 한 이야기와 비교를 해 보자면, SF 소설 단편집 중 하나의 소설로 들어가기에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의 흐름 및 몰입도를 보인다. 몇 가지 요소의 경우 너무 뻔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3살 영유아가 아니라면 눈치를 챌 수 있을 만큼 복선을 대놓고 뿌려 주긴 하지만 – 예를 들자면, 스토리의 서론을 설명하면서 새와 여자에 대해 적어 놓았는데, 스팀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등장 인물들의 일러스트를 확인해 보면, 대충 이 두 캐릭터가 동떨어진 관계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 그래도 억지스러운 반전에 찌든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이렇게 반전 요소를 대놓고 공지해도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게 더 나은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게임에서 아쉽게 생각한 건 스토리의 마무리였는데, 스팀 페이지에 “주인공은 수수께끼의 소녀가 나타나면서 더 깊은 비밀을 알게 되고, 이 비밀은 그의 세계를 영원히 바꿀 것입니다.” 라고 나오지만, 이 비밀의 정체가 생각보다 그렇게 깊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면을 적자면 비밀이 밝혀지는 극적인 장면 자체는 좋았는데, 게임 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의문의 해소 또는 세계관의 깊은 면을 다룰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으로 엔딩을 봤을 때는 뭔가 뜬금없게 나왔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개인적으로 달곰씁쓸한 엔딩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게임의 엔딩도 반추를 해 본 뒤에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으나, 엔딩 이전의 스토리 흐름을 생각해 보면 “아 … 그래도 좀 아쉬운데 ….’ 라는 감정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 게임에 추천을 남긴 건 단순히 스토리 때문에는 아니다. 오히려 스토리보다는 시각적인 면이 훨씬 내 취향을 저격해서 추천을 남기게 되었다. 거칠지 않은 선을 사용하면서 인물 표현을 잘 해낸 그림체, 추상적인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몇몇 배경화면 및 CG 들, 그리고 다채로운 색감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눈이 질리지 않게 만드는 것까지, 비주얼 면에서는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시각적 방향성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참고로 스팀 뉴스 중 하나에 온라인으로 스티커를 판매한다는 공지를 볼 수 있는데, 게임의 전체적인 그림체와는 약간 다르지만 배경에 조금씩 등장한 적이 있는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을 감상할 수 있다. 구매해 볼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으나, 배송비 걱정 때문에 구매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 결론적으로, 분량이 매우 짧고 스토리의 짜임새가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맛이 있었고 스토리의 흐름도 비추천을 남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여 일단은 추천. 가격 대비 플레이타임의 경우 위에서 말했듯이 그리 좋지는 않은데, 직접 플레이 해 볼 생각이 있다면 할인할 때 구매하는 걸 권장한다. 한국어 번역의 경우 잘 되어 있는 편이고, 직접 플레이 했을 때 몇 군데의 오타가 있었지만 스토리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담) 굉장히 아이러니한 말일 수 있으나, 스팀 페이지의 트레일러에서 대놓고 게임을 스포일러 하고 있기 때문에 트레일러는 보지 않는 걸 권장한다. 예전에 플레이했던 <위니언 바이러스> 의 경우도 스팀 페이지에 대놓고 게임 내용 스포일러들을 걸어 놓았었는데, 물론 이 게임은 <위니언 바이러스> 보다 짧아서 스포일러의 가치가 그 게임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게임 내용을 직접 플레이하기도 전에 다 알려주는 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