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정보
Rain World: 관찰자는 Rain World의 DLC 확장팩입니다. 잠깐 스쳐가듯 보았던 무언가, 또는 어디론가를 향해 여정을 떠나세요. 발밑에서 세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때, 당신은 과거에 매달릴 건가요? 아니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 건가요?
전에 마주했던 것과는 다른 야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지의 생물이 추적하고, 오르고, 뛰어들고, 사냥합니다. 새로운 종들이 찢고, 쪼아내고, 파고들고, 숨죠. 포식자와 먹이의 정의가 바뀝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길 잃은 외로운 슬러그캣이 왜곡된 세상의 파괴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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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四聖諦) 중 고성제 (苦聖諦), 존재 자체가 괴로움임을 인식하라. 들어가기 앞서 본인의 철학/종교적 지식이 아주 해박한 편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이 모든 내용은 전부 개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스포일러방지 모종의 이유로 사망한 어린 고대인을 의식을 통해 공허 유체에 융해시키게 된다. 그러나 그는 융해되지 못 하고 남아 메아리로 변화, 떠돌게 되었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 자신을 두고 나아가는 세상에 대한 불안, 고독함 등등 여러 이유로. 관찰자는 과거부터 다른 슬러그캣들과는 달리 소외된 삶을 살아왔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자연 속 슬러그캣들은 무리 생활을 하는데도. 초반 컷신이나 꿈에서 볼 수 있듯 동족들이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아(我)란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연기(緣起)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불교의 관점. 무아(無我),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찰자는 처음부터 타자와의 관계에서 소외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존재의 근거를 갖지 못했고 그 존재를 찾기 위해 외부로 떠나는 운명을 짊어진다. 둘 모두 결과적으로는 존재적 외로움, 존재 자체의 괴로움을 갖고 있다. 서로 대구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 메아리는 사후의 고독, 관찰자는 생존의 고독. 관찰자는 메아리를 볼 수 있었고 돌려보내졌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씩이나 되돌아온다. 돌아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주기처럼 업의 찌꺼기가業識, Karma-Vāsanā 쌓이고, 그것이 현실에 투영되어 불교의 사바세계처럼 나쁜 방향으로 썩어들어가기 시작한다. 곧 메아리는 관찰자를 끌어들여 자신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들로 데리고 간다. 관찰자가 여러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각기 다른 심정, 태도로 존재하는 메아리를 '관찰'할 때마다, 메아리는 셀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려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한 조각씩 찾아간다. 이 메아리가 부여하는 것은 카르마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어떤 종류의 집중에 가깝다. 그래서 이것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관찰자의 '숨기' 능력이 비교적 약화한다. 세상과 섞이는 대신 나와 너를 찾고 있으므로. 실제로 엔딩으로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은 이 집중이 가장 높아져서 완성되었을 때다. 결말부에서 하나로 모여, 메아리는 자신의 미완성된 융해가 일어난 공간과 시간대에 존재하게 된다. 이곳은 아주 중요한 자리다. "한 생각 일어나는 곳에서 모든 업의 흐름이 시작된다." 화엄경, 죽음과 미련의 근원이 시작된 업의 원천이 메아리에게는 이 장소다.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메아리는 관찰자라는 타자와 관계를 맺고, '아주 먼 미래부터 과거까지를 살펴보던' 자신의 쪼개진 자아상들을 관찰당해 정립되었다. 끝내는 한 자리에 '자신'으로서 존재하면서, 이 자아에 대한 미련 자체가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걸 모으고 나니 막상 이것들이 영원하지도, 본질적이지도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내가 나여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나'에 묶고 끊임없이 헤매게 만들었다. '나'에 대한 집착이 내가 남들과 구별된다는 인식을 만들어내고, 내가 잊힐까 봐 두렵게 만들었다. 고통을 주던 고독함은 사실 자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모두 실체 없는 것임을 인정한 순간 속박은 사라졌다. 이제 메아리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 세상의 진보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던 욕구를 내려놓고 풀려난다. 다음 단계로 갈 준비가 되었다. 구하려 할 때 구할 수 없고, 구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구해진다. 유명한 불교적 관점이다. 물에 인 파문이 완전히 사라져 공이 되었다. 평안한 물로 변했다. 결말 컷신에 대해... 유희적 존재론은 존재의 근본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놀이, 실험, 우연성, 장난스러운 생성의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다. 즉, 세계와 존재가 어떤 목적을 향한 필연적 질서라기보다 스스로 움직이고 변화하고 붕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마지막에 나타난 놀이방은 매우 순수한 공간이다. 삶에 대한 집착 없는 순수한 놀이의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는 관찰자는 매우 행복해 보이고, 햇살이 낡은 방과 그를 밝히고 있다. 숨길 것도 숨을 것도 없으니 찾을 것도 없고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오로지 놀이만이 존재하는 순간이다. 메아리가 '나'로 남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 해방되었듯 관찰자도 타인에게 '나'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결말 이후에도 동족이 존재하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방에 남아 현재, 지금의 공간이 주는 기쁨을 즐길 뿐이다. 우리 역시 이 마음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렸을 적 공과 인형을 들고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며칠 뒤의 일은커녕 장난감에 대한 걱정도 없이 놀고 또 놀았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이게 미래나 과거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는 아무 목적도 없고 자신을 반복하는 놀이일 뿐이다. 존재가 스스로 얽매이고 심각해질 때 그것은 붕괴하게 된다. 썩어가던 세계와 온갖 재앙 가득한 세계들처럼. 그래서 관찰자는 자아의 탐방으로부터 벗어나 이 순수한 놀이의 공간에 남았다. 어떻게 보자면 고대인들이 그토록 찾던 열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둘 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마저 잊어 평안해지는 것이니까. 때때로 삶은 정말 복잡해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에게 어떤 모습으로 내가 보일 것인지, 그들이 나를 잊지는 않을지, 내가 어떤 형태로 살아야 나라는 사람에 맞을 것인지 고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생각해보면서. 그리고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관찰자가 방대한 양의 길과 악천후 속에서 헤맨 것과 비슷하다. 유명한 철학가들과 종교인들도 다르지 않았던 걸 보면 생물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마음인 셈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것들을 몽땅 잊어먹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우리 하루가 옛날 장난감 놀이와 꼭 같은 것처럼, 정말 별일 아닌 듯이 웃어보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도 같다. 내가 되는 것에 고민하는 대신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에, 기쁨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듯 슬픔도 별 것 아님에, 메아리가 떠나면서 남긴 인사처럼 감사해보고 싶다. 종합해서, 원작이 스토리의 큰 틀과 분위기를 잡았고 다운푸어가 그 앞뒤를 메꿔 개연성, 울림을 더했다면 와쳐는 다양성과 고대인 사회, 개인에 집중한 느낌을 준다. 디스토피아의 쓸쓸함, 종교적 클라이맥스의 벅차오름, 단편 소설의 씁쓸함을 한 데 모은 듯한 3부작이 되었다. 원작에서 언급만 되던 고대인들의 사회상과 도시 풍경 등 조명을 잘 받지 못했던 부분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단 점에서, 로어나 세계관에 관심이 있었던 유저들에겐 좋은 선물이 됐다고 생각한다. 난이도에 대해선, 원작 또한 고난이도로 유명한 작품이니 이렇다 저렇다 다루고 싶지 않다. 다만 원작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 맵과 맵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바뀌는 풍경, 반복자들이나 진주를 통한 부가 설명 등등... 체험하고 추측할 부분들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플레이하는 내내 어리둥절해진 부분도 많았고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원작/다운푸어간의 연결성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하루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연결성이 이렇게 없어서야 DLC가 아니라 새 작품에 가까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