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아벨론: 20년 경력의 RPG 장인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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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gamesTM

 

 

Q. 당신이 처음 접한 비디오게임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처음 접한 건 TRS-80이란 컴퓨터로 접한 Haunted House란 게임이었습니다. 텍스트 기반 어드벤처 게임이었죠. 온갖 거짓말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게임이었어요. 지금도 이 게임을 플레이 한 걸 후회합니다. 끝에서 두 번째 판까진가는 갔었는데, 도저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단어 조합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또한 이 게임 때문에 저는 마법검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됐습니다.(역자 주: 마법검은 Haunted House 게임 내에서 지겹도록 사용하는 아이템입니다.)

 

 

Q. 당신의 커리어를 보면 문학과 스토리텔링에 관한 엄청난 지식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인가요?

 

저는 토마스 제퍼슨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과학과 기술관련 전공 프로그램을 이수했었죠. 그곳에서 저는 한 번도 똑똑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하위 10% 정도 됐었기 때문에, 뭐랄까 머리 좋은 애들한테 얻어맞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실제로 얻어 맞았다는 게 아니라, 성적이나 뭐 그런 것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아프진 않더라도, 마음이 받은 상처는 더 오래가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그냥 대충 시간을 때우면서 알바나 좀 하고 지냈습니다. 그 외 남는 시간의 거의 전부는 TRPG 모듈을 만드는 데에 썼었죠.

 

 

Q. 당신은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팬입니까?

 

처음에는 팬이었었죠. The Keep On The Borderlands 같은 경우는 너무 유명한 거니까 제외하고 말하자면, 최초로 한 D&D 시리즈는 Cult of The Reptile God과 그리고 엄청난 스케일의 모듈을 자랑하는 Temple Of Elemental Evil(TOEE)였어요. 그런데 TOEE 같은 경우는 출시되고 몇 년이나 문제점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죠. 결국 저와 같이 하던 사람들은 전부 다 접게 되었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저는, D&D를 버리고 슈퍼월드, 챔피언스 그리고 워해머 쪽으로 갈아탔어요. 하지만 D&D는 저에게 충분히 영감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화형의 스토리와 규칙들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가상의 역할극에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죠. 그 점이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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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비디오 게임 산업 쪽에 발을 들이게 된 건가요?

 

히어로 게임즈(RPG 게임책을 파는 출판사)에 있던 제 편집자가 당시 300달러짜리 소프트웨어 하나를 받고선 저로 하여금 드래곤플레이의 D&D 부서 사람들과 면접을 보게 했습니다. 그때가 처음으로 – 마지막은 아닙니다 – 제가 마치 창녀가 된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을 때였죠.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제가 좋아하는 프랜차이즈의 게임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거였어요. 그 점 때문에 그나마 밤에 잠이라도 잘 수 있었죠.

 

 

Q. 스토리 작가뿐만 아니라 코딩이나 게임 디자인 쪽에도 관심이 있었나요?

 

저는 게임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 해보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제 경력에 있어서 스토리 작가 이외의 것들은 별로 인정 받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작업한 작품에서 디자인이나 코딩은 거의 할 기회가 없었어요. 아마 잘 된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적어도 다른 것들을 시도할 기회가 있었으면 그것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코딩에 대해서도 배워보려고 했는데, 저는 그쪽 분야에서는 별로 신통치 않더군요.

 

 

Q. 인터플레이에서 당신이 처음으로 작업한 메이저 게임은 뭐였나요?

 

제 첫 메이저 작품은 Descent To Undermountain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캐릭터의 역할과 능력 설정에 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게임을 만들 때 윗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 말이죠. 그 다음에는 폴아웃 2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폴아웃 2를 만들 때는1편 때 만큼의 리더십이라던가 창의력, 디자인 관리 같은 요소들이 없었습니다. 폴아웃1은 제가 이제껏 해 본 RPG 게임 중에 가장 혁신적이었는데 말이죠. 2편을 만들 때는 게임이 완성되기도 전에 출시하라는 압박이 정말 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버그에 시달리게 된 거에요. 저는 폴아웃 2를 참 좋아합니다만, 전체적으로 좀 더 관리를 받고 출시됐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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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마 이 시기에 있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인피니티 엔진(발더스게이트와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등에 쓰인 엔진)과 관련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엔진을 개발한 바이오웨어는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예전부터 저는 블랙 아일 스튜디오는 이 엔진이 없이는 그들 게임의 거의 대부분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사실임이 계속해서 증명되었죠. 엔진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바이오웨어는 그 일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Q. 당신은 발더스게이트와 아이스윈드 데일 제작에도 참여했지만, 그래도 당신이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역시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일 것입니다.

 

그건 그렇게 좋게만 보이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인터플레이는 플레인스케이프에 대한 라이센스는 있었지만 그걸 가지고 뭘 해야 할 지는 몰랐어요. 그들은 그걸로 플레이스테이션용 게임을 만들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죠. 그래서 그냥 라이센스 집어넣고, 인피니티 엔진 쓴 다음에, 개발진을 원래 하던 것의 반 정도만 투입시키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한 겁니다. 좀 심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이 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게임 제작 이전부터 스토리를 써야 했고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었죠. 우리는 규모는 작지만 아주 열정적인 팀을 꾸렸었고, 그래서 게임이 그렇게 오래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유저들이 테마라던가 게임의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 아주 좋은 반응을 보여줬는데, 그 점이 저를 아주 기쁘게 했어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아주 무서웠을 겁니다. 앞으로 이 일을 더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Q. 발더스게이트: 다크 얼라이언스는 당신에게 있어 처음 다뤄 보는 액션 RPG게임이었을 텐데요, 이 게임을 제작할 때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다크 얼라이언스에서는 제가 스토리를 담당했습니다. 저는 제작사인 스노우블라인드의 기술력에 대해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스토리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짠 스토리는 제 상사들에 의해서 이리저리 휘둘렸는데, 그 때 스토리를 미리 작성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을 미리 하는 것이 일종의 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죠. 왜냐하면 일찍 끝낸 만큼 오랫동안 지겹게 훈수를 들어야 하니까요. 그걸 알게 되니 스토리에 대한 어떤 제안을 하는 것도 한계점에 다다르더군요. 어쨌거나, 제가 처음에 짠 스토리가 빛을 보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종 결과물도 인상적이지 못하고 완성이 덜 된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스토리를 짜는 거야 말로 다른 어떤 작업보다 먼저 끝났었는데 말이죠. 어쨌든 저는 이 게임의 기본적인 게임성이 앞서 언급한 스토리의 부족한 부분을 잘 메꿔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 한계에 대해 깨닫고, 제가 콘솔용 액션 RPG를 만드는데 있어서 수석 디자이너로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다음 작품은 저 대신 David Maldonado가 맡도록 그를 추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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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 생각에, 인터플레이에서의 일들이 어떻게 꼬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까?

 

인터플레이는 파산위기 전 5년 동안 적자에 시달리는 상태였습니다. 일단 콘솔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어요. 뒤늦게 따라가려고 했지만 말이죠. 또한 산하 스튜디오인 블랙아일의 경우 자기들만의 엔진을 개발한답시고 수 년간을 낭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짓을 하느라 스튜디오가 망가져 버렸어요. Monolith 같이 인피티니 엔진이 아닌 다른 엔진도 써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고, 그래서 Torn과 같은 많은 타이틀들이 취소됐습니다. 그러느라 몇 년이 그냥 지나가 버렸고, 이후로도 똑같은 일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이런 건 직원들의 사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거죠. 전체적으로 봤을 때, 비록 아이스윈드 데일 같은 게임이 수익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됐지만, 일단 바이오웨어가 떠나버리고 나서부터는 새로운 성공작을 만들지 못했어요. 그리고 앞서 말한 아이스윈드 데일 같은 시리즈도 비록 만들 때는 재밌었지만, RPG 장르의 발전에 어떤 공헌을 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죠. 그래서 뭐랄까, 물 위에 떠다니는, 아니, 천천히 물에 잠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대 즐거운 시절은 아니었어요.

 

 

Q. 발더스 게이트 3와 폴아웃 3를 제작할 때 상황은 더 안 좋아 졌습니다. 그리고 그 두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인터플레이를 떠났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그곳에 있는 동안, 폴아웃 3의 개발은 시스템, 지역, 스토리 라인에 대한 대강의 구상만 잡아놨을 뿐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게임을 만들 스태프도, 개발자도 없었거든요. 저는 라이온하트라는 게임 제작 때문에 자주 빠져야 했습니다. 사실 블랙 아일의 끝 무렵에는 제가 하는 일도 정확히 뭔지도 모를 정도로 모호해 졌어요. 라이온하트 제작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났을 때, 저는 이제 자유롭게 폴아웃 3의 개발에 참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고 발더스 게이트 3 제작에 투입되게 됐습니다. 그 일 역시도 별로 즐겁지는 않았어요. 발더스 게이트 마저 취소되고 나자, 저는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후 폴아웃 3 제작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별로 아는 건 없네요. 하지만 저는 그 이후로도 혹시 폴아웃을 다시 작업하게 될 것을 대비해 게임의 디자인에 대한 생각들을 계속 해 왔습니다. 어쨌건, 그 때 당시에는, 저에겐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개발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순식간에 다 망해버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요.

 

그래서, 비록 폴아웃 시리즈를 사랑하긴 했지만, 저는 인터플레이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예전에 같이 작업했던 스노우블라인드라는 제작사에 잠깐 머물면서 Champions of Norrath라는 게임의 대본 작업을 도와줬었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직하고 1년도 안 돼서 폴아웃 3 개발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유감스러웠지만, 그래도 그건 저나 다른 개발자들의 잘못 때문은 아니었어요. 제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점이 있다면 스노우블라인드와 프리랜서로써 일했던 그 시절에 그냥 프리랜서로 쭉 일했다면 더 나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는 겁니다.

 

 

Q. 당신은 이후 전 블랙 아일 직원들과 함께 옵시디언을 공동 창립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이 처음으로 작업한 게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구 공화국의 기사단 2편의 수석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리고 네버윈터 나이츠 2의 동료 등장인물에 대한 설정을 거의 다 제가 썼죠. 그 당시 저는 딱히 스타워즈 팬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구 공화국의 기사단과 그 세계관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타워즈의 최신 세계관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시대에 관해서도 즐길 줄 알게 되었죠. 또 스타워즈 단편의 각본 몇 개를 쓸 기회도 얻게 되었고, 더 좋은 점은, 스타워즈: 클론 전쟁과 관련된 단편 만화의 스토리도 쓰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제가 처음 만화라는 분야에도 발을 들이게 됐을 때인데, 당시 다크 호스에 있던 제 담당 편집자인 Dave Marshall은 인내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기 시간을 내어주는 데 있어 아주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평생 잊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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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마 그 시기에 옵시디언의 가장 유명한 게임이라면 폴아웃: 뉴 베가스 일 텐데요.

 

예전 인터플레이에 있을 때 수 년간 폴아웃의 지역, 팩션, 기술, 그리고 심지어 나이트 킨(폴아웃의 슈퍼 뮤턴트 NPC)의 정신병에 관한 설정까지 짜놨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폴아웃 세계관에 복귀해서 그러한 폴아웃과 관련된 요소들을 통합시키는 작업을 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DLC 관련 작업들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Q. 당신은 작년 2015년 6월에 옵시디언에서 퇴사해서 라리안 스튜디오로 이직했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나요?

 

저는 스벤 빈케(라리안 스튜디오의 창립자)가 좋습니다.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 2의 시스템과 던전에 관한 설정도 마음에 들고요. 이쪽의 스토리 작가들 역시도 좋아합니다. 또 제가 원하는 어떤 운영상의 지원이라던가 신뢰라던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라리안 스튜디오는 저를 만족시켜 줬습니다. 또한 그들은 제가 말하는 게임 디자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 주더군요. 물론, 제 말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 말을 들어주기는 하니까, 저로서는 그거면 충분합니다. 지금 저는 디비니티: 오리지날 신 2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선 아직 말할 수 있는 게 없네요. 바라건대, 그런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간 오겠죠. 그러니 계속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Q. 개인적으로 최고의 순간들이 있었다면 언제였을까요?

 

처음으로 최고의 순간이라는 느낌을 받은 건 사우스 파크에서 프로듀서로 일할 때였어요. 애니메이션 컷신들을 편집할 때 일종의 희열감을 느꼈었죠. 또, 플레인스케이프가 출시되고 한 달이 지났을 때도 그랬었고, 지금은 저와 제 동료들이 작업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 그리고 저에게 영감을 받아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게 된 사람들을 볼 때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Q. 게임 디자이너의 역할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직업은 점점 전문화 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게임 산업에 발을 들였을 때는, 게임 디자이너 같은 것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이런저런 디자이너들이 다 있죠. 시스템, 레벨, 스토리 등등 여러 분야로 세분화되었고 이제 이런 식으로 분류를 안 한다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겁니다.

 

 

Q. 장래에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지금 당신이 모드나 게임을 만들겠다면 그 무엇도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해버리세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임 개발 엔진도 널려있고, 게임을 유통하기도 쉽습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동기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장래의' 라는 말은 집어치우고 진짜 게임 디자이너가 되세요. 누구라도 RPG 분야에 관해서 저에게 자세한 조언을 듣고 싶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 트위터(@chrisavellone)에 한 줄 적어 놓으시면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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